해체감리 논란에 대한 견해(건축물관리법 개정 관련)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축물관리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2026년 4월 시행 예정)’을 둘러싸고 건설 및 안전 업계 내부에서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이슈의 핵심은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 절차의 효율화’와 현장 전문가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공공 안전 및 감리의 독립성’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대형 붕괴 사고 이후 강화되었던 안전 규제 기조 속에서, 이번 개정안이 현장에 미칠 파장에 대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현재 건축물관리법의 규제를 받는 건축물 해체 및 철거 공사는 현장에 투입되는 전문가의 자격 요건을 두고도 깊은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해체계획서 작성은 건축사를 비롯해 건축구조기술사, 건축시공기술사, 건설안전기술사 등 구조와 안전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장을 감독하고 통제해야 하는 해체공사 감리자 자격은 사실상 건축사 중심으로 강력하게 제한되어 있어, 실무 시장의 불균형과 전문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1. 2026년 개정안의 주요 골자
행정 절차 간소화를 위한 해체공사 일괄신청 허용
정부가 입법예고한 이번 개정안은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나 공공건축물 해체 시 발생하는 중복적이고 번거로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러 동의 건축물을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해체할 때, 기존의 개별 신청 방식 대신 행정 절차를 한 번에 묶어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일괄신청 제도를 도입하여 사업 기간 단축과 행정 비용 절감을 도모했습니다.
동일 해체감리자 지정 및 CM 연계 근거 신설
또한, 하나의 발주처나 관리자가 여러 건축물을 해체할 때 동일한 해체공사감리자를 중복 지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아울러 현장의 건설사업관리자(CM) 등에게 해체감리자 지정을 우선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함으로써, 프로젝트 전체의 공사 관리 일관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2. 건축사 업계 중심으로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
해체감리의 독립성 훼손과 상호 견제 기능 상실
현장 안전을 책임지는 건축사 중심의 전문가 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국민의 안전장치를 완벽히 무력화하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해체공사는 건축물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는 고위험 작업이므로, 시공사의 무리한 공기 단축이나 부적절한 공법 변경을 철저히 제어할 ‘독립된 감리자’가 필수적이지만, 일정과 비용을 총괄하는 건설사업관리자(CM)에게 감리 역할까지 부여할 경우, 경제적 논리에 밀려 감리 본연의 견제와 감시 기능이 상실될 리스크가 크다는 주장입니다.
1인 다수 현장 감리 허용에 따른 안전 사각지대 우려
한 관리자가 여러 건축물을 해체할 때 동일한 감리자를 지정할 수 있게 한 조항 역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감리원 한 명이 동시에 여러 필지나 건물을 교차 감독하게 되면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적 징후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주·수시 감리의 특성상, 현장 관리가 부실해져 제2의 광주 학동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건축사 업계의 주장입니다.
3. 해체감리 자격요건을 둘러싼 또 다른 갈등
건축사와 기술사 간의 비대칭적 진입 장벽
건축물관리법 개정안은 국토교통부와 건축사 업계 간의 대립을 넘어, 해체감리 자격요건을 둘러싼 기술사 및 해체 업계와의 거대한 갈등 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해체공사감리자는 건축사사무소와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기술사 법인 등) 모두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축사는 면허 취득 후 1인 사무소 개설과 35시간의 교육 이수만으로 즉시 감리업무 수행이 가능한 반면, 기술사는 「건설기술 진흥법」에 따라 자본금 1억 5천만 원 이상과 최소 10명 이상의 기술 인력을 상시 고용해야만 자격을 인정받는 치명적인 비대칭성이 존재합니다.
실무 시장의 건축사 독점 체제 고착화
이러한 ‘건진법’의 높은 벽으로 인해 역학과 안전에 정통한 1인 혹은 소규모 구조기술사·건설안전기술사 사무소는 해체감리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인 반면 중소형 건축사사무소는 전국 소형 현장의 해체감리 지정 풀(Pool)에 수월하게 등록하여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형 건설엔지니어링사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민간 소규모 철거 현장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무 시장에서는 건축사사무소의 사실상 독점 체제가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고위험 해체공사에 요구되는 실질적 전문가 역량 논란
해체 업계와 한국기술사회는 해체공사가 일반 시공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적 이해와 실시간 안전 판단이 요구되는 고위험 공정임을 강조합니다.
설계 전문가인 건축사 중심의 감리 체제로는 복잡한 구조물의 하중 변화 대응, 가설공법 평가, 긴급 상황 시 구조해석 등 위험 변수를 통제하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사회는 2022년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현재까지 심리가 진행되는 등 역량과 자격 요건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푸른고래의 인사이트
앞에 언급한 것처럼 해체감리 제도를 둘러싸고 건설엔지니어링(CM) 통합 관리론이나 업역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제도가 왜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취지’입니다.
시장의 논리나 행정 편의주의에 밀려 제도의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해체감리 제도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안전한 해체공사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푸른고래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전제로 의견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1. 독립성 확보를 위한 ‘허가권자 지정제’, CM 통합은 취지에 역행
현재 해체감리는 발주자가 임의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허가권자(지자체)가 미리 구축해 둔 해체감리자 명부를 통해 지정·통보하고 발주자가 별도로 계약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를 취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발주자와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오직 객관적인 시각에서 해체 시 안전관리를 수행하라는 취지입니다.
(앞서 다루었듯, 2021년 광주 학동 철거현장 참사 이후 상주 의무화 등 감리 제도가 대폭 강화된 이유 역시 발주자와 시공사의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통제 권한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국토부의 개정안에서는 효율성을 이유로 이를 건설엔지니어링(CM)과 통합하여 관리하자는 방향입니다.
공정 관리 측면에서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이는 ‘독립된 객관적 감시자’라는 해체감리 제도의 본질적 취지를 훼손하는 위험한 접근입니다.
효율성이 안전을 압도하는 순간, 제도는 다시 과거로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2. 단지형 다수 동 해체공사, ‘규모별 통합 발주 기준’의 정립 시급
다만, 현실적인 공사 여건을 고려한 제도적 유연성은 필요합니다.
하나의 대형 재건축·재개발 단지처럼 다수의 동으로 구성된 현장의 경우, 해체감리를 무조건 동별로 쪼개어 발주하는 것보다 ‘통합 발주’하는 체계가 훨씬 합리적입니다.
해체 공정 역시 종합적인 해체 계획 하에 움직입니다.
동별로 유기적인 공정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고, 대형 가설시설이나 고중량 건설기계의 운영 동선을 통합 관리·조정해야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동마다 서로 다른 감리자가 배치되어 따로 목소리를 내고, 각자 자기만의 기준으로 동별 해체감리 역할을 한다면 현장은 오히려 혼선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장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한 ‘규모별 해체감리 통합 선정 기준’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제도적 개방과 현실적 독점 체계
그렇다면 왜 건축사 업계는 이러한 합리적인 통합 발주를 반대하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건축사 업계의 기득권 지키기와 수주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현재 법안 자체를 보면 건축사뿐만 아니라 기술사가 포진된 건설엔지니어링사도 감리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제도적 독점은 아닌 셈이지만 실제 감리자 명부를 들여다보면 건축사사무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사실상 건축사 독점 체계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건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감리 시장이 건축사 중심으로 쏠리게 되었고, 건축사 업계는 현재의 유리한 수주 체계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대형 현장을 소규모 동별로 쪼개어 발주해야만 영세한 건축사사무소들이 각자 한 자리씩 수주할 수 있는 구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술사 및 해체 전문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핵심 이유이기도 합니다.
4. 근본적 질문 : 해체감리, 과연 누가 전문가인가?
여기서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건축물이 무너지는 과정을 감독하는 일에 누가 가장 적합한 전문가인가?”
단언컨대 건축사는 ‘설계’ 전문가이지 ‘해체’ 전문가가 아닙니다.
건축물을 안전하게 부수는 과정은 세우는 과정보다 훨씬 정밀한 역학적 계산을 요합니다.
구조물이 해체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하중의 변동을 예측해야 하고, 특수 해체 공법, 고난도 가설계획 및 가설공법, 대형 장비의 지반 지지력 검토 등 안전조치 전반에 걸친 고도의 기술적 지식과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시공 과정에서 계획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돌발 상황이나, 현장의 긴급한 구조적 변화, 공법 변경 등이 발생했을 때, 설계 중심의 지식을 가진 건축사사무소는 대응 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구조기술사, 현장 역학을 아는 건축/토목시공기술사, 위험 요인을 프로파일링하는 건설안전기술사가 이 업무에 훨씬 적합합니다.
현장 규모와 위험도에 따라서는 공학적 전문성을 갖춘 산업안전지도사 역시 충분히 수행할 역량이 있습니다.
해체감리는 단순한 행정 절차나 특정 업계의 ‘밥그릇’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제도가 태동하게 된 피의 교훈을 기억한다면, 오직 ‘건축물과 구조물의 안전한 해체’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라도 업역 간의 이권 다툼을 멈추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술적 기준에 따라 진짜 전문가가 현장을 지키도록 제도를 바로잡아야 할 때입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mk.co.kr/news/realestate/11473453
https://www.ikld.kr/news/articleView.html?idxno=334974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286166645450888&mediaCodeNo=257






